인구지리 (population geography)

 

인구지리에서 중요하게 보는 사건은 크게 2개가 있다.

하나는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population explosion)

두번째는 인구의 불균등한 분포(unevenly distributed population)

 

기원전 10,000년부터 현재까지 인구의 그래프를 그리면 아래와 같은 그래프가 나온다.


위에서 인구의 증가가 아닌 폭발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된다. 그러면 이전에는 낮게 증가하던 인구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 주요한 원인은 산업혁명과 녹색혁명을 들 수 있다. 산업혁명으로 지구의 부가 증가하고 그에 따른 의학의 발전, 유전자 공학의 발전으로 인한 식량문제 해결 되었다.

 

이런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한 3가지의 의견들이 있다.

우선 맬서스의 인구론에 따른 의견이 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수용능력(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가서 결국에는 수용능력이 인구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맬서스는 정부 또는 가정에서의 인구조절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위의 그래프처럼 수용능력이 인구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예상하였다.

 

맬서스의 의견과 다르게 과학발전을 통해서 수용능력의 향상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2번째 의견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수용능력을 향상시켜 맬서스가 말한 비관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맬서스에 상반되는 의견이 있다. 마르크시즘에서 나오는 의견으로써 문제는 위에서 말한 수용능력과 인구의 증가가 아니며 세계적인 수용능력의 차이가 인구문제의 중점이며 국제적인 분배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인구증가를 분석하면 위 3개 내용을 섞어서 분석하게 된다.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수용능력은 인구를 상회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일부 지역에서는 수용능력이 떨어져서 나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지구 전체의 수용능력은 상승하였지만 세계적으로 분재정책의 부족하여 일어나는 문제로 해설할 수 있다.

수용능력이 인구를 상회하는데 중요한 이유는 출산율의 저하에 있고 이는 각국의 경제발전과 생황수준의 향상과 각국의 가족정책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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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학교복학 +ㅂ+b

일기 2009.09.01 12:23
긴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복학을 했습니다.

1학기와 같이 시원한 학교 중앙도서관 9 층에 자리를 잡고 블로깅을 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이번학기에 교류학점으로 신청한 상명대 수업의 개강이 저번주라는 소식을 듣고 좌절을 하다가 마음을 추수리고 있습니다.

이하 2학기 시간표 +ㅂ+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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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경제학에서 학파라는 말이 시작된 것은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된 고전경제학파부터다.
고전겨제학파는 영국에서 발전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 사회상에서 알수 있다. 당시 영국은 타국가보다 공업이 발전하였고 엔클로져 운동으로 적절한 노동력을 제공할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고전경제학파들이 만든 이론들은 그들을 추앙했던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였고 자본가들은 그 이론들을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었다. 대표적인 예로 애덤스미스가 이야기 했던 "자기 자신의 이익에 관해 연구하면 자연히, 더 정확히 말해 필연적으로, 사회에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탱하게 된다."라는 이야기는 자본가가 욕심을 내서 돈을 벌어도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뜻으로 해설되었다.
애덤스미스 이후 고전경제학파라 하는 사람들은 애덤스미스의 자유경제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이론화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우선 인구론을 썼던 멜서스는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식량의 부족을 야기하고 결국 사회를 파괴할것 이라고 애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결책으로 노동자들의 도적적 자제를 주문하였다.

리카도는 지대와 임금 철칙설 등이 있다. 리카도는 임금에는 시장가격이 있고 자연가격이 있으며 시장가격은 시장에서 노동자들의 경쟁으로 만들어지는 노동자들의 임금이여 자연가격은 노동자들이 생활을 유지할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을 말한다.

리카도는 임금철칙설을 이야기하면서 노동자들은 자연가격을 조금 넘는 임금을 유지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다음세대에서 너무 많은 노동자가 시장에 나와 시장가격을 더욱더 하락시키고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요구한것이 멜서스의 도덕적자제다.
임금철칙설과 추구하는것은 같지만 대상이 다른 지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지대는 곡물법의 보호를 받고 있던 지주를 공격하는데 쓰였다.
모든 토지가 같은 미옥도를 가진다면 지대는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비옥도를 가질수 없다. 처음 경작이 이루어질떄는 지대를 걷지 않다가 식량의 수요가 증가하고 처음 경각한 토지보다 비옥도가 높은 토지가 경각되면서 이전에 비옥한 토지에서 지대를 매기기 시작한다.
외국에서 값싼 밀이 이 들어오면 높은 지대는 없어지고 생활을 더욱 좋아질것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의 노동자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 였다. 곡물값이 오르면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는 자연가격은 증가하지만 노동자가 생활하는데 쓰이는 돈의 비중은 똑같기 때문이다.

시니어는 임금 기금설로 노동자들을 더욱 압박하였다.
임금은 처음에 총량이 정해져 있으며 노동자들이 투쟁이나 파업등으로 저항해도 임금은 바뀌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시니어는 임금을 늘릴러면 노동자들의 수을 줄여야 하고 그 방법으로는 멜서스가 말한 도덕적자제를 이야기했다.
이런 임금기금설은 잘못된 이론이후 이후 다른 경제학자들에 의해 깨지게 된다.

위같은 고전경제학파는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는 않았지만 경과적으로 영국의 이익을 증가시켰다. 그러면 영국가 다른 환경을 가진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독일의 경제는 발전이 영국등과 비교해 뒷떨어져 있으니 고전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무역보다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여 경쟁력을 길러여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이후 국민경제학파의 시작점이 되었다.

이런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고전경제학파는 칼 마르크스의 거센 공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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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가격혁명, 엔클로저 운동으로 토지와 분리된 노민들은 기계로 무장한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그들은 이전 가내수공업등 집안에서 일하던 일의 정도는 차이가 별로 없었지만 노동자들의 모든 활동을 억매는 규칙은 그들을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치게 했다.

이런 상황이 유지되면서 영국은 2개의 국민으로 나누어졌다.
하루 16시 이상 좁은 공장에서 서서 노동만을 하는 노종다와 손에 기름, 흙을 묻혀본적도 없지만 수많은 공장과 돈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
이런 두 계급의 갈등은 풀어지기는 거녕 악화도었고 마침내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의 공장 기계를 부시는 러다이츠 운동으로 확산되게 된다.

하지만 어다이츠 운동은 자본가들의 손에 움직이는 정부와 의회에 의해 저지되었고 노동자들은 투쟁 궤도를 수정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정부와 의회에 자신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사람을 넣을수 있도록 하는 선거법의 재정을 요구하는 차티스트운동을 전게하게 된다.
차티스트 운동의 열기는 시들어갔지만 그들이 주장한 요구의 대부분은 수요되었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의회로 들어갔다. 하지만 간접정치참여로는 챙취할수 있는것이 제한되어 있음을 깨달게 되는 노동자들은 새로운 카드를 뽑게 된다.

새로운 카드는 노동조합이였다.
동일한 처지에 있고 동일한 도시에 일하던 노동자들은 같은 공장에서 모였고 이것이 확산되어 같은 도시의 노동자 전국에서 같은 업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뭉치는 노동조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노동조합은 초기부터 자본가와 정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들은 모이는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 징역을 받았고 노동조합을 탈퇴하라는 폭력과 협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은 최고의 투쟁수단으로 발달하였다.

우리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은 단순히 위에서 얻어진것이 아니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얻어진 소중한 단체다. 이를 단순히 이익집단으로만 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ps. 영국이나 여타 서방에서 노동조합이 나온 역사를 보면 그들의 이익을 위해 뭉쳤다고 할수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이익집단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70 ~ 80년대 군사독제시절 노동조합은 민주화를 이끌었던 한 축으로써 그들은 단순한 이익집단으로 보는건 한국의 툭수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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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어떤 한 사람이 부자가 되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을 많이 가져야 부자가 될수 있다.
그럼 국가의 부가 많아지려면 어떨게 해야 할까? 국가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된다 이때 돈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고 금, 은은 돈이였다.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수많은 금과 은을 본국에 가져왔었다.
금광, 은광이 있는 국가들은 돈을 만들수 있었고 유럽의 국가들은 자국의 금과 은의 반출을 제한한다.

이전부터 금, 은이 별루 없던 나라는 어떻게 부를 늘릴까? 무역수지 흑자에 답이 있다.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서 많이 수출하고 적게 수입을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국의 많은 돈이 자국에 들어오고 적은 돈이 외국으로 나갈 것이다.

그럼 무역 수지 흑자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외 무역을 확대 하고 자국의 상업의 발전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바로 중상주의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상주의는 프랑스의 관료인 콜베르의 이름을 따서 콜베르티즘이라고 불린다.)

유럽의 국가들은 중상주의를 위해 몇가지 정책을 펼치게 된다.
1. 보조금 : 특정 물품의 제작자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여 제품을 더욱 쉽게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2. 보호관세 : 국내의 특정 산업과 경쟁이 되는 해외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주는 것을 말한다.
3. 선진 기술 유치 : 특정 산업의 선진 기술자를 국내로 데리고 오는 것을 말한다.
4. 특정 산업에 대한 교육 장려 : 기술 학교등을 만드는 것이다.
5. 곡물법 :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식사를 제공해야 했고 그 때문에 농산물에 대한 엄청난 규제가 있었다. (가격을 제한한다거나 아니면 대부분을 국가에 강제적으로 팔아야 하는 등 )
6. 해운업 양성이다. (물품을 만들어서 수출을 하려면 어쩔수 없이 선박이 필요한데 그에 필요한 해운업 양성은 산업의 발전과 상업의 발전에 꼭 필요한 요소였다.

영국은 기존 유럽 상업의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를 막기 위해 항해조례라는 것을 발표한다.
항해조례의 내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에 들어오는 배들은 영국인의 소유거나 선원의 3/4이상이 영국인이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로인해 배를 끌고 물건을 팔던 네덜란드는 엄청난 타격을 입고 영국이 새로운 강자로 들어서게 된다.

항해조례는 영국 본토뿐만 아니라 아메리카에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기존 네덜란드인이 아메리카의 물품을 영국에 배달하던것을 영국인 또는 아메리카에서 하게되어 아메리카에서 해운업이 발전하게 된다.

중상주의자들은 식민지를 본국의 부를 증대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았다.
그들은 식민지들이 풍부한 재료로 산업을 발전 시키는것을 법으로 금지 시켰으며 재료는 모두 본토로 수출하게 하였고 생산물을 식민지에 대 팔게 하였다. 그로인해 본토의 부는 증가하지만 식민지의  산업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난해졌고 이로인해 식민지의 불만은 확대되었다.

중상주의가 행했던 정책을 보면 시장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특정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알수 있다. 이는 한국이 60~70년대 국가주도의 경재정책과 비슷하다고 볼수 있다.

이렇게 중상주의가 전 유럽에 퍼지게 되자 국가의 간섭에 반대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처음은 중농주의자들에게서 나오게 된다.
중상주의에 의해 제일 많은 피해를 입은 농업, 재료를 만드는 1차 산업등을 대변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들 중농주의자들은 국가가 모든 시장에 간섭을 통해서 특정 산업을 양성하는것은 잘못되었으며 특정산업이 발전을 위해 농업등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사유재산을 신성한 것으로 여겼고 농민들이 생산한 제품을 비싼값에 누구에게나 팔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중농주의에서 일부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은 이후 고전경제학의 뼈대가 된다.

중상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인 자유방임은 국가의 시장간섭을 절저하게 배격한다.

시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거래가 이루어 지다보면 보이지 않는 손(가격)에 의해 조절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였다.

또한 분업도 중요한 내용이다.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시장이 작은 제품이면 물품의 생산에 대한 분업이 적게 이루어질것이고 시장이 큰 경우에는 분업이 다양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전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통해서 시장이 커지면 분업은 다양하게 이루러질 것이고 그로 인한 생산성도 같이 향상 될 것 이다.
그러면 전 세계적으로 생산성은 증대한다는 말이다.

아 어려워;ㅁ;... 자유방임 끝;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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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엔클로져는 토지를 소유했던 영주가 자신의 토지, 또는 장원의 공유지에 큰 울타리를 치고 땅에서 생활을 꾸려나가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양을 기르는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이것도 맞는 말이지만
목축보다는 이전의 토지 임대료를 엄청 높게 올려서 이전에 살던 사람을 내쫓고 비싼 임대료를 낼수 있는 사람들에게 토지를 임대하기도 했다.

목축을 하든 임대료를 올리든 결과는 똑같았다 수많은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에서 내쫓겨 거리로 나왔고 농촌은 황폐화 되었다. 이에 사회의 지도층 일부와 왕은 엔클로져로 농촌에서 내쫓긴 농민들이 폭동으로 변할지 걱정하기도 했고 주요 세금이였던 인두세의 대상이 줄어드는것에 대해서도 걱정하면서 법으로 엔클로져를 금지했지만 효력은 거의 없었다.

농촌에서 내쫓긴 농민들은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전의 도시 경제에서는 길드가 모든 것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국민경제가 들어오면서 길드중심의 경제로는 이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새로운 경제의 계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 나타난 계층은 중간상인들이다.
중간상인은 기존 길드의 장인들이 하던 원자재의 구입과 만들어진 물건의 판매를 가져왔다. 이후에 시장에서의 수요가 많아지자 중간상인들은 여러장인들과 원자재 공급을 계약하고 만들어진 제품에 대해서도 독점 계약을 맺는 선대 제도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렇게 바꿔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중간상인들은 물건의 생산부분의 분업화를 생각하게 된다. 이는 장인들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장인들의 많은 반발을 가져왔다. 이에 중간상인들은 넘쳐나는 농촌의 땅을 사거나 임대해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예전같으면 노동력이 없어서 중간상인이 장인들에게 의지해야 했지만 엔클로져로 인해 농촌에서 수많은 노동력이 도시로 왔으며 분업화로 인해 기술력을 지닌 고급인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로써 중세에 영주들에게 주도권을 뺏어온 길드는 서서히 자본을 가진 중간상인들에게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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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15세기 ~ 16세기가 되면 기존 이탈리아 상인들이 독점하던 지중해 무역을 벗어나 아프리카를 지나는 아프리카 항로가 개척되고 아메리카 항도로 개척된다.

기존 지중해 무역은 육로를 이용하여 위험성이 높았고 들어오는 물품도 소규모였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경유하는 해양 항로가 개척되자 상황은 급격하게 반전된다. 갤리온등 대규모 함대가 인도로 가서 수많은 향신료를 가져왔고 대규모로 들어온 상품을 이용한 상업의 발전이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또한 스페인이 발견한 아메리카에서는 향신료 대신 수많은 금 은이 유럽으로 들어왔다. 이후에 이야기 하겠지만 신대륙에서 들어온 수많은 금과 은 때문에 유럽은 화폐가치의 급격한 하락, 물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가격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항로의 개척으로 대규모 무역이 가능해지자 이전의 개인 또는 소규모의 집단이 모으는 자금으로는 감당할수 없는 규모로 확대되자 주식회사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투자를 권장하고 투자한 돈 대신 주식을 줌으로써 이득이 나왔을때 주식당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였다.

주식회사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주식회사는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엄청난 상업적 이익을 거두게 된다.
이전에도 자본이 자본을 물어오는 사회였지만 상업혁명이후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 사회가 만들어지게 된다.
상업혁명으로 모이게된 부는 유럽의 산업혁명의 기초 자금의 역활을 하게 된다.(상업혁명을 기점으로 유럽이 아시아를 제치고 세계의 우위에 서게된다.)

스패인은 아메리카에서 수많은 광산을 발견하였고 본국으로 금과 은을 가져왔고 들어온 금 은은 화폐로 만들어졌고 전쟁 비용으로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되었다.
전 유럽에 들어온 아메리카의 은화로 인해 기존에 있던 화폐 가치는 급격하게 하락하였고 상품의 가치는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물가 상승(상품 가치 상승)은 물건을 가지고 상업에 종사하던 부르주아들(시민계급)에게 수많은 부를 가져다 주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정부, 토지을 빌려서 농사를 짖던 농민들, 토지를 임대하여 지대를 받고 있던 봉건영주들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정부는 일정하게 들어오는 소득이 있는데 지출의 양이 증가하자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에게 더많은 손을 빌리게 되었다.(이를 계기로 시민혁명를 할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할수 있다.)
토지를 입대하는 농민들도 들어오는 소득에 비해 엄청난 물가 상승으로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고정적인 지대를 받고 생활하는 봉건영주들도 물가상승으로 비해를 입긴 마찬가지였다.

기존 토지를 가지고 있던 봉건영주들이 엄청난 물가 상승으로 인해 기존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을 바꾸게 되면서 산업혁명의 토양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이후는 다음 시간에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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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이전글에서 도시에서 성장한 길드의 장인들과 직인들이 서로 싸우다 이후에 등장한 왕에게 권력을 빼았긴다고 하였다.

이번에는 중세에 힘없던 왕이 어떻게 힘을 가지게 되었고 어떻게 발전을 하였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중세에는 국민이라는 용어가 별 의미가 없었다. 다들 어느 장원의 농민 또는 어디 영지의 영지민 아니면 어느 도시의 도시민 이렇게 통일된 국민관이 없었다.

이러다 15세기가 되면 유럽 국가의 경계가 확실하게 드려나며 국민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여지게 된다. 이전에는 유럽의 종교는 카톨릭이며 대학에서 배우는 언어는 라틴어 뿐이였는데 점점 각 국가의 언어가 널리 쓰이고 흔히 영국의 영문학작품이 나오고 스페인의 문학작품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국민은 어떻게 나오게 된것일까?
우리는 실마리를 중세 중반부터 성장한 중간계급에서 찾아볼수 있다.
중간계급은 안정을 중세 전쟁에서 안정을 원했고 이전에는 영주, 귀족이 이런 안정을 주었지만 교통의 발달로 인해 중간계급의 활동 반경이 한 영주의 영지를 넘게되자 중간계급은 더 넓은 안정을 줄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그게 바로 왕이였다. (중간계급이 영주들과 손을 잡지 않은 이유중에 하나는 중간계급이 자치한 도시와 영주들은 적대적 관계였던 것도 한 이유가 된다.)

중간계급은 왕에게 돈을 빌려주고 왕은 그 돈으로 관료를 고용하여 전 영토에 행전관을 파견하여 전국에 동일한 영향력을 퍼지게 한다. (이게 바로 관료제)
또한 왕은 돈으로 상비군을 조직하게 된다. 이전까지는 전쟁이 나면 영주들이 가지고 있던 군대로 싸우던 왕이 직접 군대를 가지게 되면서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게 된다.
왕을 제정적으로 도와주던 상인이 잘되게 하기 위해 왕은 중상주의를 펼치게 된다.
또한 왕이 권력을 가지는것에 대해 이론적 기틀인 왕권신수설도 이떄 만들어진다.

이렇게 중앙집권적인 나라가 완성되자 왕은 최초의 세금인 인두세를 거두면서 국가 제정을 확충하게된다.

왕이 나오고 국가라는 개념이 퍼지게 되면서 경제적 스케일은 도시를 벗어나서 국가로 퍼지게 된다.

강력한 왕권이 중세 영주들을 제압하고 교회을 공략하게 된다.
왕권이 강력했던 프랑스, 스페인은 교회가 왕권에 들어가게 되었고 영국, 독일은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권력을 잃게 된다.

오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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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도시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나라의 정치적 경재적 중심적인 역활을 하는 곳?

2번째 대답이 맞는것 같다.
고대의 도시는 정치적 중심지의 역활을 하였고 중세에 들어오면서 상인들에 의해 영주에게 도시의 권리를 사오고서 자유로운 노동시장과 시민 계층의 중심지적인 역활을 하였다.
근대에 들어오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빈부의 격차로 인한 계급갈등이 보이면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표출되는 곳이기도 했다.

현대에 도시화는 선진국의 주요 지표이며 한국인의 50% 정도가 도시라고 말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

현대의 도시는 위에서 말한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다. 현재의 도시는 근현대사에서 다루는 문제가 아니니 빼기로 하고
한국의 중심 도시인 한양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서울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의 도읍으로 처음 역사속에 나오게 된다.
백제의 왕성은 잠실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 있었다고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후 조선이 나라의 수로를 서울로 정하기 전까지 서울은 유력한 지역으로는 뽑히지만 나라의 수도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서울이 왜 중요했는데 알아보자
서울은 물류의 중심지다.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중심 교통수단은 선박이였다. 서울 가지고 있는 한강은 아래 남한강으로는 충주까지 연결되며 소백산맥만 넘으면 낙동강까지 연결이 된다.
그리고 북한강은 철원까지 연결된다.
이렇게 중요한 교통수단을 가진 서울이 중요하지 않다며는 그게 이상할 것이다.

이런 중요한 이유로 서울이 새 조선의 도읍으로 정해졌고 서울은 절저히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다.
궁궐 서쪽에 사직, 동쪽에 종묘를 두어 유교적 이념을 도시에 투영시켰으며 도시의 토지는 신분에 의해 분배하였다.

이후에 별 중요한 내용이 없으므로 끝.;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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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이전에 했던 이야기를 가볍게 복습하고 새로 정리해보자.
우선 중세의 봉건제에서는 일하는자와 싸우는자 기도하는자가 있다.
일하는자 즉 농노와 싸우는자 즉 영주는 서로 쌍무적 관계로 엮어져 있었다.
농노는 안전과 토지를 얻었고 영주는 농노들의 노동력을 얻었다.
기도하는자 교회는 농노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고 십일조와 토지등을 받았다.

이렇게 봉건제가 유지되다 십자군 전쟁으로 또다른 계층이 나온다. 바로 장사하는자 상인이다.
십자군 원정으로 영주들의 수요가 증가했고 상거래를 통해서 돈을 번 상인들은 돈으로 영주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샀고 영주에게 독립된 도시에 대한 권리도 샀다.

이탈리아 북부도시에서 동방과의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돈을 벌면서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권리를 영주에게 사왔다.
플랑드르 지방의 브루헤  또는 북독일의 도시들은 발트해와 북해의 무역을 통해서 돈을 벌었고 그들도 영주에게 도시의 권리를 사왔다.
이렇게 북유럽과 남유럽의 상업이 서로 발전하다가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프랑스의 상파뉴 지방에서 북유럽의 상인들과 남유럽의 상인들이 만나 정기시장이 열리게 되었다.

초기에 상거래로 돈을 번 상인들은 돈으로 은행업등에 뛰어 들었다.
중세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엄청난 죄악으로 여겨졌지만 위처럼 상인이 등장하고 상업의 발달이 기존 사회 관념을 바꾸게 만들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상인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상인들은 농민들중에서 자유민이 되서 기회를 잡아서 돈을 번 사람들이다. 기존 봉건제에서는 꿈꾸지 못하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중세 후기들어가면서 전체적으로 농민들의 지휘가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어떤것이 농민들의 지휘를 상승하게 한 것일까?
서로마의 멸망 이후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가고  사회가 조금식 안정되기 시작한다.
중세 초기에는 부역으로 세금을 내던 농민들이 곡물 화폐등으로 세금을 내면서 부역에 쓰던 노동력을 다른일에 쓰기 시작한다. 그들은 곡물, 돈을 모아 영주의 부역에서 완전히 벗어나게된다. 돈을 모은 사람들이 상업에 뛰어들고 이들이 도시를 만들게 된다.
사회가 안정되자 농민들은 유럽의 황무지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개척을 통해서 토지는 늘어나는데 기존 영주가 농민에게 많은 세금을 부여한다면 농민들은 다른 영지나 도시로 도망친다.

이후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슬게 된다. 유럽 수많은 사람 죽어갔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었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노동의 가치는 상승했다.
이렇게 농민들의 노동가치가가 상승하자 사회적으로 많은 기득권층들은 농민들의 칼로 억압하게 된다.

유럽각지에서 수많은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교회, 영주들은 반란을 진압하고 주동자를을 모두 처형한데, 하지만 불붙기 시작한 사람들의 생각에는 주먹으로 막지 못했었다.
결국에는 기득권층이 지게 되고 기존 영주와 농민과의 쌍무적인 관계는 해체되게 된다.

이렇게 중세를 지배하던 장원이 해체되던때에 도시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길드라는 수공업자들의 조합이 생기게 된 것이다.

길드의 구성원인 도제, 직인, 장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장인은 말 그대로 해당 수공업에 대한 최고 기술자이다.
도제는 장인에게 해당 수공업을 배우는 제자로 일정 돈을 내고 장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그도제는 장인의 말에 복종을 해야한다.
도제가 장인에게 기술을 다 배우고 독립을 할수 있다. 돈이 있는 경우 가계를 내어서 장인으로써 장사를 할수 있겠지만 돈이 없는 경우 장인에게 고용되는 직인이 될수도 있었다.
직인은 장인에게 고용된 기술자로 일정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모든 기술자들이 분야별로 길드에 가입되어 있었고 자신들의 독점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때문에 고용주인 장인과 고용이된 직인, 도제와의 갈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길드가 해당 물품을 독점하고 돈을 벌고 도시의 경재권 정치권을 장악해 나가자 장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챙기면서 직인과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장인들은 장인만이 가입할수 있는 길드를 만들고 직인, 도제에 대한 차별을 하게 된다.
이에 직인들고 길드를 만들어 장인들에게 반항을 하지만 언제나 이기는건 장인들이였다. 이렇게 장원에서는 사라지게된 계급갈등이 도시에서는 생겨나게 되었고 도시의 상공업자들은 계급 갈등 때문에 새로운 권력을 견재하지 못하게 되고 길드는 서서히 해체되어 간다.

새로운 권력은 바로 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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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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